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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은 진실을 밝히는 곳일까요, 아니면 힘 있는 자의 논리가 승리하는 곳일까요. 최근 공개된 한 법정 스릴러 영화는 이 불편한 질문을 정면으로 던집니다. 조현병 무죄 판결부터 변호사 비용에 따라 달라지는 판결까지, 이 작품은 법이 인간의 고통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는 순간들을 가감 없이 보여줍니다. 과연 정의는 법정 안에만 존재하는 것일까요.

조현병 무죄 판결이 남긴 것, 정의의 좌절
영화는 충격적인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피해자의 얼굴에 기름을 부은 뒤 성냥불을 켜고 담배에 불을 붙이는 행위가 반복되었지만, 가해자는 조현병 진단을 근거로 모든 혐의에서 무죄를 선고받습니다. 판사는 "피고인의 정신 질환이 조현병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피고인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없습니다"라고 판결합니다. 피해자는 평생 지워지지 않을 얼굴의 화상을 안고 살아가야 하지만, 법은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었습니다.
이 장면은 현실에서도 반복되는 법의 딜레마를 보여줍니다. 심신 미약이나 책임능력 판단은 법의 중요한 원칙이지만, 동시에 피해자에게는 또 다른 상처가 됩니다. 법정을 나서며 가해자의 아버지는 "개인적으로 저는 법원이 그가 더 이상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도록 막아주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하지만, 이는 사실상 법이 예방과 보호 기능을 상실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피해자에게 "값진 경험이 되셨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입니다. 이는 2차 가해의 전형적인 형태로, 피해자의 고통을 가볍게 치부하는 폭력입니다.
무죄 판결 이후 가해자와 그의 친구들이 모여 축하하는 장면은 더욱 잔인합니다. "법정에서 미친놈으로 인정받는 걸로 만족해"라는 대사는 법의 허점을 악용하는 자들의 뻔뻔함을 보여줍니다. "네가 괴롭힌 피해자들의 부모들은 뭘 해야 할지 고민하며 잠들겠지"라는 말은 피해자 가족이 느낄 무력감을 대변합니다. 이들은 돈도 없고, 설령 있다 해도 전기세를 낼 정도지 변호사 비용을 낼 여력은 없는 사람들입니다. 법은 평등하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자본과 권력이 있는 자에게만 유리하게 작동하는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변호사 비용이 결정하는 판결, 법의 무력함
영화는 OJ 심슨 사례를 통해 법의 무력함을 더욱 명확히 보여줍니다. OJ 심슨은 아내와 전 여자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되었지만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10년 후, 그는 호텔에서 기념품을 훔친 절도죄로 33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두 사건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요. 변호사가 제시하는 답은 명확합니다. "그는 재판을 받을 당시 비싼 변호사를 고용할 형편이 안 됐습니다. 그러니까 범죄의 심각성이 아니라 재판에서 누가 그를 변호했느냐가 문제였던 겁니다."
이 대목은 법정이 진실을 찾는 곳이라는 믿음을 정면으로 부정합니다. 범죄의 무게보다 변호인의 능력과 비용이 판결을 좌우한다는 냉혹한 현실을 드러냅니다. 영화 속 변호사는 "만약 승소한다면, 건물 안쪽에 당신 회사 이름을 바꿔드리겠습니다"라는 제안을 합니다. 정의는 브랜딩과 자본으로 환전될 수 있는 상품처럼 취급됩니다. 이는 법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을 심어주는 동시에, 많은 이들이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불편한 진실을 확인시켜 줍니다.
증인 신문 장면은 법정의 이중성을 잘 보여줍니다. 한 증인은 디카가 화장실에서 도망치는 것을 목격했다고 진술하지만, 실제로 살인 장면을 본 것은 아닙니다. "피해자의 남편이 유리 조각을 들고 있었습니다"라는 증언은 법정 진술과 경찰 진술이 다르다는 점에서 혼란을 가중시킵니다. 변호사는 이를 공격하며 "유리 조각을 들고 있던 사람이 피해자의 남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라고 반박합니다. 진실은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법정은 진실을 찾는 곳이 아니라 서로의 주장을 겨루는 전쟁터처럼 보입니다.
피해자의 남편 라카는 "디카가 내 아내를 죽인 범인입니다"라고 단언하지만, 변호사는 "당신 옷에 묻은 아내의 혈흔이 당신 몸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라며 오히려 그를 의심합니다. 이 장면은 법정에서 진실이 얼마나 쉽게 왜곡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진실을 알고 싶다"는 말은 너무 자주 등장하지만, 정작 누구도 진실 자체보다는 자신에게 유리한 결론을 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법정은 정의를 구현하는 곳이 아니라, 누가 더 설득력 있게 말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결정되는 수사학의 무대가 되어버렸습니다.
폭탄으로 점령된 법정, 폭력적 정의의 딜레마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법정에 폭탄이 설치되는 장면입니다. "제가 이 법원에 폭탄을 설치했습니다. 그러니 침입하려고 하지 마십시오"라는 선언은 법이 무력할 때 개인이 정의를 집행하려는 극단적인 선택을 보여줍니다. 이는 "법이 진실을 밝히지 못한다면, 나라도 진실을 밝히겠다"는 절망적 외침입니다. 주인공은 "저는 누군가를 죽였지만, 죽이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저기 앉아 있어야 할 사람은 당신이지, 제 의뢰인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며 법정의 판단을 뒤집으려 합니다.
이 장면은 작품의 핵심 질문을 던집니다. "법이 무력할 때, 개인이 정의를 집행할 자격이 있는가?"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과 폭력으로 정의를 구현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폭탄이라는 물리적 폭력은 법정을 점령할 수는 있지만, 진정한 정의를 가져올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어내고, 처음의 피해가 가진 도덕적 무게마저 흐리게 만들 위험이 큽니다. 법이 불완전하다고 해서 폭력으로 법을 대체하는 순간, 정의는 '내가 옳다고 믿는 힘'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습니다.
영화는 "사람을 구하는 건 법이 아니라 사람에게 달려 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이 문장은 따뜻해 보이지만, 동시에 섬뜩합니다. 그 말이 진실이 되는 순간, 우리는 법 대신 '누가 더 센가, 누가 더 치밀한가'의 세계로 넘어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전직 특수부대 출신의 주인공이 어떤 방식으로 정의를 바로 세울지는 영화의 결말이 보여주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 방식이 또 다른 폭력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니나가 원하는 건 사면이 아닙니다. 복수가 아니라 진실이야"라는 대사는 이 작품이 단순한 복수극이 아니라 진실을 향한 여정임을 암시합니다.
이 법정 스릴러는 법의 무능과 정의의 좌절을 가감 없이 보여주면서, 동시에 폭력으로 정의를 대체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위험한 지도 함께 질문합니다.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면서도, 폭력이 또 다른 악이 될 수 있음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관객이 분노만이 아니라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질문을 들고 극장을 나설 수 있다면, 이 작품은 진정한 의미를 가질 것입니다. 법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법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더 나은 법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