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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은 분명 허술한 부분이 있는데도 자꾸 다시 생각나게 되는 영화다. 왜냐하면 이 작품은 흔한 “인간 대 괴물” 구도로 가지 않고, 인간과 오크 모두에게 나름의 명분과 비극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특히 듀로탄을 중심으로 한 오크 진영의 이야기는 예상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었다. 새로운 땅을 침략하는 입장이지만, 그 출발점이 단순한 탐욕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공감이 갔다. 게다가 굴단의 지옥 마법이 오크들마저 병들게 만든다는 설정은, 이 전쟁이 단순한 종족 대립이 아니라 타락한 힘에 휘둘리는 비극이라는 걸 보여줘서 더 인상적이었다.

내가 가장 좋게 본 지점은 듀로탄의 태도다. 그는 전사이지만 무조건적인 파괴를 원하지 않고, 자기 종족이 잘못된 방식으로 살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다. 이 부분이 참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오히려 몇몇 인간 인물보다 더 명예롭고 더 고민이 깊어 보여서, 보고 있으면 누구에게 감정이 가야 하는지 헷갈릴 정도다. 솔직히 이런 지점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오크를 단순한 악역으로 소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아쉬운 점도 뚜렷하다. 서사는 분명 크고 복잡한데, 영화가 그걸 한 편 안에 너무 많이 욱여넣으려 한다. 메디브의 타락, 카드가의 추적, 로서의 복수, 듀로탄과 굴단의 대립, 가로나의 정체성과 선택까지 전부 중요해 보이는데, 정작 하나하나 깊게 파고들 시간은 부족하다. 그래서 감정이 터져야 할 장면에서도 “어? 벌써 여기까지 왔다고?” 싶은 느낌이 있다. 특히 원작을 잘 모르는 사람 입장에서는 세계관 설명이 친절하지 않아서 따라가기가 꽤 버거웠을 것 같다. 나 역시 처음 봤을 때는 누가 누구 편인지, 왜 이렇게까지 중요한 사건처럼 다뤄지는지 순간순간 놓쳤다.
또 하나 공감하면서도 반대하고 싶은 부분은, 이 영화를 두고 “팬들만 좋아할 영화”라고 단정하는 시선이다. 맞는 말이긴 하다. 실제로 팬이 아니면 진입장벽이 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팬서비스만 있는 영화라고 보긴 어렵다. 적어도 오크와 인간을 병렬적으로 다루려는 시도, 비주얼로 세계관을 실사화하려는 야심, 전쟁 속 명예와 배신을 함께 보여주려는 구성은 꽤 진지했다. 완성도가 부족했을 뿐, 방향 자체가 가벼웠던 건 아니라고 본다.
결국 이 영화는 완벽한 성공작이라기보다는, “여기서 조금만 더 다듬었으면 정말 대단했을 텐데” 싶은 아쉬운 야심작에 가깝다. 나는 그래서 이 작품을 실패라고만 보지 않는다. 부족한 점은 많지만, 게임 원작 영화도 충분히 묵직한 판타지 전쟁 서사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은 미완성이라 더 기억에 남는 영화였다.
